쉼터

격포에 오면 이별이 있다

아설타 2008. 6. 22. 17:55

      격포에 오면 이별이 있다 / 송수권 격포에 오면 이별이 있다 속설俗設이다. 이는 결코 예고없이 밀어닥친 경고성 발언도, 대환란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전가론도 아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 믿음 하나에 바 짝 긴장하고 방파제 등대 밑까지 애인들은 키를 낮추어 게들처럼 슬금슬금 기어든다. 묻 건데, 우리가 사랑을 하며, 단 한 번이라도 눈시울 적시는 이별을 해 본 적 있었던가. 애 인의 머리칼이 무더운 황혼의 갯바람 속에 수숫단처럼 나부끼고, 산머루알처럼 익어가 는 그 눈동자 속에 자신의 모습이 단 한 번이라도 각인刻印된 적이 있었던가. 격포에 와 보라! 그것을 알게 된다. 그 진실 속에 바로 눈물이 감추어져 있고, 눈물은 불신을 낳게 되어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예정되고, 대 환란이 그 눈물 방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너에게 실험관 속의 액체 한 방울을 끓여 가장 순수한 증류수 를 얻어낼 수 있는 진실탐지기 하나를 선물하겠다. 아니 적멸보궁 한 채를 보여주겠다. 알다시피 적멸보궁엔 믿음의 부처가 없다. 그러므로 적멸보궁으로 들어가는 길도 없다. 단지 보여줄 뿐이고, 보여줌으로써 그건 이 지상에 흘러내리는 꽃잎과 같다. 5막 4장과 같은 대장정의 서사적 드라마와 같고, 늘 뒤끝은 황홀한 비극의 연속이다. 세상엔 늘 이 비극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랑이란 대환란의 위기를 자초하는 세 균성 전염병과 같은 말, 격포에 오면 이별이 있다! 그것은 늘 두려움 없는 탈이었고 화근이었다. 일기예보는 쾌청, 오늘은 IMF 원년 5월 24일, 아침뉴스는 북악산에서 개성의 송악산이 여시 혓바닥같이 보인다고 쏟아놓았다. 근년에 들어 없는 대 기적 같은 환란이라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벌써 긴 방파제엔 떼 과부 같은 애인들이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거기엔 타이타닉호의 상갑판에서 올라온 사 람들이 최후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이 사랑의 실체를 가늠자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길을 떴을 때의 그 가슴 설레던 불확실설의 믿음과는 달리 산산 조각나고 있었다. 장엄한 고요였다. 무엇이 이토록 대장정大長征 앞에서 가슴 무너지게 하는가. 서로 울 고 잇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애인들이 얼굴을 돌리고, 게구멍 속에 숨어 눈물을 닦는다. 대충란大患亂이다. 노을 속을 저어가던 배 한 척이 끝내 숯덩이처럼 타고 만다. 고군산 열도, 위도, 임수도, 형제섬, 비안도, 개똥여치까지 한 무더기 모닥불로 타고, 해는 수 평선 물밑으로 임종처럼 내려앉는다. 잔광이 퍼지면서 오랜 착시현상 끝에 타고 남은 숯들의 뼈가 온 바다에 그득하다. "내가 숯처럼 타버리는 순간, 너는 이처럼 깨끗한 눈 물 한 방울 보일 수 있겠는가?" 지전에 가까운 사랑은 이 부질없는 의심 하나로 점점 커 지고 마침내는 말 꼬투리 하나에 불신이 생기고, 俗設이 생겨난다. IMF 원년, 더 어둠이 짓눌려 오기 전에 그래, 다시 한 번 경고성 주의를 발하자. 애인들이여, 격포에 오면 이별이 있다.

    '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빙하의 표정  (0) 2009.01.07
    한 번 따라해보세요  (0) 2008.09.02
    비는 소리없이 내린다/ 이외수  (0) 2008.03.31
    나의 소망  (0) 2008.01.11
    끝없는 흔들림  (0) 2007.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