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나무

아설타 2012. 10. 21. 23:42

                        나무 / 송호준


움직임 바쁜 시간 속을 돌며 바람이 생의 옆구리 찌를 때마다

치우침 없는 평행을 떠올렸지만

미분하지 않아도 꼬일 수밖에 없는 기울기였어

스스로 가꿀 줄 몰라 한 줄의 맑음도 쓸 수 없다

못쓴다는 표현이 옳을 게야

멈추어 사고하는 법 모르는 게 아니라 생각이 멈춰 있기 때문

비우지 못한 채 비워진 단단한 고체

정화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막연함이 네게로 향한다


찰랑대는 햇살 온통 푸름인 물결 위로 흐르면

네 시간도 천천히 자란다

분수 지켜 사는 올곧은 자태, 가늠키 어려운 부동의 심성

빛남의 깊이 당당 캐 하지

고요의 혜안 숲을 이루니

맑아있는 하늘 싱그러움 틔우고 넌 그 찬란함 빛낸다

나눔의 손길 눈부셔 오지만

잠시 빛나는 우린 그러지 못하다

시사적이다 


완벽의 대칭 이룬 것 아닌데도 흔들림 없이 곧추 서 있는 건

공존의 미덕 아는 까닭이요

내게 벗어 놓고자 하는 속 시원함보다

채우려는 본능만 앙금 져 있는 것은 삶이 너와 동떨어져 있다는 반증

지고한 속내 우러러 묵도 올리고

우듬지 끝에 싹트는 기운 삶의 한 페이지에 꼭꼭 채워

지혜로 푸르르 있는 네게서 행복의 이파리 한 장 날리고 싶다


새싹의 봄날처럼 생동의 피 돌게 하는 넌

기대고픈 평온의 안식처요

우리 돌아가야 할 엄마의 고운 품.

 

                파도의 이야기 /송호준


햇살의 미소 닿지 않는 바닷가에

파르르 한 물결 일고

옷고름 풀어헤친 바람 구슬피 울어대면

꿈결처럼 흐려져 간 삶의 저편에서

파도가 전하는 애달픈 소리 들려온다


손잡고 친구 하자며 웃어주던 눈부심이 고왔던 아이

어른이 다 되고서도 함께 놀아주던 순수가 좋았던 사람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함께 투신한 그녀는 꽃이 되고

뇌를 다쳐 바보가 된 그는 천진스런 웃음 날리며

선착장 이곳저곳 바람처럼 기웃거리다, 어느 날

그녀 곁에 가서 누웠다더라

“규야 이놈아”

절규하던 제 어버이 버려두고 아니 온다 하더라


자유를 수호하던 바다 어느 별빛 아래

꽃잎 되어 져버린 청춘

가엾은 어머니

퉁퉁 부어오른 울음 가슴 찢어대도

목멘 파도 숨죽였어도 돌아올 수 없었다 하더라

어둠 속을 돌며 고향 바닷가 찾는

꽃다운 젊음의 이야기 귀 기울여 보련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한평생이

숭숭 뚫려 있는 저 바위틈의 칼바람 같았을 것이다

자글자글 타는 속 수천만 번 용도폐기 됐을 것이다

피지 못하는 홑씨 되어 바스러져 가는 꿈

어루만져 주는 이 없는데

왜 우리는 낯선 하늘 외로운 곳에 서 있을까

벼랑 끝을 돌아도 싹이 틀지니

상심에 절여져 간 삶 젖은 눈빛으로 안으며

사랑의 향기 품으라 하네


파도는 오늘도 그립다 한다

돌아오지 않는 이 그립고

꽃피우지 못한 사랑이 그립고

못다 나눈 정이 그립다 한다

꿈꾸는 이에게는 아름다운 바다지만

순수가 희망인 사람들에겐 한이요, 눈물이라 하더라.

 

                함박눈 내리는 날 /송호준


 

속울음 시린 바람 회색빛 드리우는 계절은

살가움 지우기도 하지만

풋사과의 아삭거림 같은 해맑음 채워

언 가슴 녹여 주기도 하지

마른 가지위의 조각달 눈가에 허기져갈 제, 그대

잃었던 동심을 불러

환희에 빛나는 촉촉한 함성의 꽃을 피운다


행복이 불 꺼진 방안에서

손금만 한 온기에 몸을 기대는 사람들

마른 속 쩡쩡 갈라져도

쉬이 침묵하는 법을 아는 곤고함 속에는

신음조차 들리지 않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들의 겨울은

가슴부터 뚫어 놓고

밀린 사글세 싸늘한 방바닥보다

근급(筋急)한 삶마저 허물고 마는

시린 눈빛이 더 매섭게 한다


창밖의 향연조차 사치로 느껴야 하는

백지장 같은 마음이 못내 서러운 영혼들

소외된 그 가슴마다

하늘의 은총이 펑펑 내려져 있었으면 좋겠다

빛이 되어 오신 그대

나누지 못한 꿈들이 슬픔 안고 도는

우리네 마른 손길 안에 하얀 순수 흠뻑 적셔라

     

세상이 축복에 들어 본디의 모습 돌아오면

벽장의 세월 한구석에 외따로 피어나던

그립던 그 마음 다 녹아버려도 좋겠다

행복의 함박눈 즐거움 속에 차있으려니...

 

         - 하이네 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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