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

비상에 얽힌 이야기

아설타 2007. 8. 20. 16:32

                  우암 송시열과 비상 등에 관한 이야기

 

                                                           /송호준    

 

  우암 송시열에 대한 시대적 사건을 조명해보고, 비상에 얽힌 일화와
약물에 대한 잘못된 속설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하는 뜻에서 적어 봅니다.
저는 송, 시자, 열자 어르신의 12대손입니다. 사적인 관계를 논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사실 관계와 이에 얽힌 일화를 다루고자 함에 있으므로 우암으로 칭합니다.

 

 우암께서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정치가, 문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찍이 3세 때 글을 익힐 정도였고, 7세 때에는 형들이 읽는 글소리를 듣고
그대로 받아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암께서는 이 율곡의 학문을 제일로
여기고 그 학설을 한층 더 빛낸 사람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송자 칭호를 하사받은 분입니다.

 

 공자, 맹자 ,순자 등을 일컫는 “자”는 햇님, 달님, 부처님 등과 같이 극 존칭어로
위대한 성인을 뜻합니다. 우암께서는 예론에 밝고, 문하에 많은 인재를 배출
하기도 하였으며,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문묘·효종묘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많은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자대전』·『우암집』·
『송서습유』·『주자대전차의』·『정서분류』·『주자어류소분』·
『논맹문의통고』·『심경석의』·『사계선생행장』 등이 있습니다.

 

 당시 사약은 비상이었는데, 비상과 관련한 뜻있는 일화가 있어 윗분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참고 자료를 통해 옮겨 봅니다.

 

 숙종 때의 남인 허수미와 서인 우암은 언제나 서로 대립하는 사이였는데,
허수미는 우암에 의하여 한 때 좌천되기도 했고, 입장이 바뀌자 허수미는
우암을 극형에 처하자고 주장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암께서 병에 걸렸는데,
여러 가지 약을 써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우암께서 이 병이야말로 허 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방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암께서 허수미에게 사람을 보내어 약 처방을 얻고자 했는데,
집안에서는 모두가 반대를 했습니다.
이를 기회로 허수미는 우암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우암께서 "걱정하지 말아라. 허수미는 우리의 정적이지만
병든 사람을 해칠 사람이 아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마지못해 허수미의 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자,
허 수미는 병환의 내용을 자세히 묻고는 처방을 지어주었습니다.
집안의 사람들이 돌아와 처방전을 펴보니, 그 처방전에는 비상을
넣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놀라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비상을 넣어 죽게 하려고 한다면서,
이 사실을 우암께 알렸습니다.

 우암께서는 허 수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니 처방대로 지으라 했습니다.
집안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약을 지었으나 비상만은 처방전보다
조금 적게 넣었습니다.


우암께서는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고,
집안사람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허수미를 다시 찾았는데,
허수미는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드렸느냐고 물었습니다.
비상만은 조금 적게 넣었다고 하자, 비록 비상을 반만 쓰서 완치는
안 되었지만 그 정도라도 넣었으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는
없을 거라 했습니다.

 

 숙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소의 장옥정이 왕자 균(명종)을 낳자 숙종은
이듬해 그를 서둘러 원자에 봉하려 했는데, 서인측이 정비 인현왕후가
아직 젊어 왕자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왕자 균을 원자로 확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숙종은 서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일 만에 왕자 균을 원자에 정호하고 생모 장씨를 빈으로 승격시켰고,
이에 대하여  우암께서 송나라 철종의 예를 들며, 왕자 균을 원자로
세우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라는 충언을 올려 왕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되고,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게 됩니다.

 

- 숙종은 조정 원로대신이던 우암에게 끝내 사약 사발을 마시게 만들어
숙청했습니다. 우암을 사사까지 시킨 건 장 희빈을 중전으로 삼자니
우암의 열렬한 추종자인 인현왕후를 폐출하는데, 극구 반대하는 우암과
조정 서인세력이 걸림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암을 사사시키고
인현왕후를 기어이 폐서인 시켜 대궐 밖으로 축출하는 데, 성공한 숙종은
역관의 딸 희빈 장씨를 끝내 중전으로 삼고 장희빈을 중심으로 득세한
남인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사약을 여러 사발 드시고도 죽지 않자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죽이게 됩니다.
그 날 밤 흰 기운이 하늘에 뻗치더니 규성이 땅에 떨어지고 붉은 빛이 우암이
죽은 지붕 위에 뻗쳤다. 라고 조야회통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 후
숙종이 크게 후회를 하고, 사후에 그 죄가 사하여 집니다.

 

 독을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복용하면, 면역이 되어서 나중에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설이 있고, 실화로 어떤 가정부가 그 집안
식구들의 음식에 독을 넣어 모두 독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을 제일 많이 타서 먹은 가정부는 우암의 경우처럼 죽지 않고 살아났는데,
그 가정부도 평소에 독을 조금씩 복용해왔다고 합니다. 독살의 동기는 그
집안으로 인해 부모님이 죽고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한데 대한 복수심에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독에 대해서 위와 같은 속설을 믿거나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은 중독이 되지 면역이 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전혀  믿을 것이
못됩니다. 독도 의학적으로 잘만 쓰면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독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 약물 중독, 의약품 중독 등 폐해가 날로
심각 합니다. 약을 남용하지 말라는 의미도 같이 포함하여 올리는 것이니
약물을 남용하지 않고,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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